청주 CBS

 
 
목록
  거짓 이단감별사
4238 원경숙(kblove) 1858 2008-12-16 19:12
한국교회 '이단감별사' 그들은 누구인가?  
 
 
 올댓뉴스 webmaster@allthatnews.co.kr  
 
 
본지는 작년 9월 이단경계주간을 기점으로 지금까지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이단과 정통’에 대한 올바른 기준을 세워주기 위해 기획을 진행해왔다. 또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저널리스트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이단과 정통의 기준은 오직 성경밖에 없음을 천명해왔다. 

이에 요즘 한국교회 안팎으로 커다란 이슈가 되고 있는 이단감별사와 그들의 이단감별 기준에 대해 그리고 자칭 이단감별사로 하여금 이단시 된 교단에 대한 특별기획을 마련했다.

지면을 통해서나마 한국교회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이단감별사들의 행적과 과연 그들이 한국교회를 대표해 이단과 정통을 논할만한 자격과 자질을 갖추었는지 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이단의 정의 및 이단감별사의 태동 

개신교에서 말하는 이단이란 ‘그리스도안에서 규범적으로 공인된 성경과 신앙고백을 거부하거나 반대하는 자나 집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오늘날 한국교회를 바라보면 ‘자기와 견해를 달리하는 교인이나 교회’를 향해 이단이라고 못 박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성경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준’이 되고, 사람이 만들어낸 ‘교단과 교리’가 기준이 되어 ‘정통과 이단’을 분별한다는 것은 참다운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다. 

지나간 역사를 돌아보면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시대가 혼란하고 혼탁할 때에 여러 신흥종교와 집단, 개인이 나타나 민심을 동요케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단 발생의 또 다른 원인에는 기성교회의 제도적인 부패와 타락, 성서해석의 오류, 자유주의 신학과 신앙사상으로 인한 교회와 교인들의 안일무사주의와 믿음의 표준에서 이탈해 유리방황하는 과정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일제치하가 시작된 1910년대 선교사들의 수가 많아지고 교회 전반에 걸쳐 간섭하는 일이 잦아지자 한국 교역자들과 의견충돌이 비일비재해졌다. 이에 한국교회의 자치와 자립을 주장한 최중진 목사를 필두로 평북 의주의 김원유 영수와 강계의 차학연 장로 등이 동조하면서 자유교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후에 이 자유교운동은 성경을 자유롭게 해석하면서 그 신앙이 탈선하게 되었고, 1923년에는 이만집(남성정교회) 목사에 의한 자치교라는 새로운 종파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한국교계에 신흥종교와 이단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6.25동란 이후로 이는 혼란스럽고 불안한 사회상을 반영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가운데서 큰 세력을 이룬 것이 바로 박태선의 전도관, 문선명의 통일교, 나운몽의 용문산기도원 등으로 이들은 혼란한 시대를 틈타 민심을 동요해 세력을 키워나갔으며 한국교계에 큰 혼란과 손해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이들이 나타나기 이전인 1918년 12월6일 황해노회 제15회시에서 한국교회 사상 최초로 김장호 목사를 이단자로 규정하고 면직, 노회에서 제명한 사건이 있었다. 통일성과 입체적인 결속력을 무시하는 자유교회적 교회론을 주장하고, 성경을 자유주의적으로 해석한 것이 그가 이단으로 지목된 이유다. 

그러나 이때까지의 이단감별의 기준은 총회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지 오늘날처럼 한 개인의 학설이나 주장에 의해 결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단과 정통의 기준이 자칭 이단감별사라는 자들에 의해 규정되었으며, 한국교회 전체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가. 

 ◆ 탁명환

국제종교문제연구소 소장이면서 현대종교의 발행인이었던 故 탁명환 소장은 이단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사람이다. 그는 1965년 당시 용문산 기도원의 나운몽 장로(당시 한국개신교계는 나운몽 장로를 이단시 함)가 운영하는 복음신보(현재의 복음신문) 취재부 기자로 활동하면서 신흥종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  

탁명환 소장이 신흥종교운동연구가로서의 삶을 시작한 것은 1965년 신흥종교단체인 ‘영주교’를 목격한 후였다. 연구 초기에는 신흥종교에 대한 순수한 관심이 그 연구배경이 됐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기사와 사진 등을 조작하면서까지 이단과 사이비에 대한 글을 쓰기에 이르렀다. 문화일보는 1994년 2월22일자 신문을 통해 탁명환 씨가 대성교회 박윤식 목사를 비방하기 위해 사진을 합성 제작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낸 바 있다. 

탁명환 소장을 향해 이단이라 규정된 집단에서 주로 제기하는 문제는 “광고를 줄 때는 말 안하다가 광고를 안 주면 이단이라고 몰아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현대종교 직원들은 이단규정과 광고 문제를 결부시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 조선일보 사회부기자 김동섭 씨는 ‘월간조선’ 1994년 4월호에서 ‘신흥종교연구가 탁명환의 생애, 찬반 엇갈리는 이단 고발자의 비상한 삶과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어떤 교회의 경제적 지원과 협조가 있는 동안에는 그 교회에 대한 이단시비 논쟁을 걸지 않다가, 그것들이 끊어진 후에는 그 교회에 대한 이단시비 논쟁을 걸었다.                                                                               ▲어떤 교회의 물질적 도움이 있던 기간에는 그 교회의 이단성을 발견하지 못했다가 원조가 중단된 후 그 교회의 이단성을 발견했다면 이단사이비 종교연구가로서 탁명환 씨의 능력과 자질이 의심스럽다.              ▲탁명환 씨가 나중에라도 그 교회의 이단성을 간파했다면 과거 그 교회로부터 받았던 경제적 도움을 되돌려줬어야 했다. 

고소 고발의 명수였던 탁명환 소장은 1984년 10월10일 목사와 장로 106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집단 고소하는 한국 개신교 역사상 최고의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탁명환 소장에 대한 이단 연구가로서의 자질 시비는 비단 위에 열거한 사건들 말고도 1990년 12월경 어떤 여인(김모)과 함께 찍힌 사진과 1991년 2월경 김모씨와의 통화내용이 도청된 녹음테이프와 녹취록이 교계에 유포된 사건이 있다. 이후에도 여자문제에 대한 시비가 끊이지 않았으며, 그를 찌른 임홍천 씨는 “소위 이단사이비 종교를 척결한다는 의로운 사명감은 동인(탁명환)이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에 불과할 뿐 사실은 비윤리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 파렴치한이라는 생각에 동인을 살해할 뜻을 더욱 굳히고...”라는 내용을 증언했다. 

◆ 최삼경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제73회 졸업생(1980년 졸업)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빛과소금교회 담임인 최삼경 목사는 월간 ‘교회와 신앙’ 발행인이며, 현재 한기총 이단사이비문제상담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한국교계를 대표하는 연합단체의 이단사이비문제 상담소장인 그가 오히려 이단의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이단척결에 순교정신으로 앞장섰다고 자처하는 최삼경 목사는 삼위일체 삼신론을 내세워 자신이 속한 총회에서까지 외면당하기도 했다. 예장통합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는 최 목사가  “일부 신학자들의 이론을 성경보다 우위에 두고 성경을 부정하는 ‘이단적 주장’을 하고 있다”고 규정하며 “자신의 주장이 정통이요, 이단정죄의 잣대”라고 말하고 있다고 비판했었다.

심상용 목사는 그의 저서 ‘종교 마피아적 목사 최삼경 씨의 한국교회 짓밟기’를 통해 “최삼경 씨는 스스로를 삼신론자로 주장해 삼위일체 신앙을 부정하는 ‘악질 이단자’임을 밝혀 충격을 주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또한 이단 판단 기준은 장로교 교리가 아니고 정통교리의 기준인데 성경을 기준해서는 안 되며 내가 믿는 교리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괴상한 논리를 펴 “자신의 교리에 맞지 않으면 모두 이단이 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삼경 목사는 “불행하게도 한국교회는 삼위일체에 대해 양태론적 이해를 충분히 벗어나지 못한 목회자들이 많다”고 주장하면서 한국교회 대다수 목회자들을 양태론적 이단자들로 보았다.  
그는 이단을 만들기 위해 언론을 만들고 언론 게임을 하고 있다며, 통합측에서 이단규정하면 모든 교회가 이단으로 인정한다는 말을 늘어놓기도 했다. 

▲지난 20여년 동안 예장통합측 이단 규정의 총지휘는 최삼경 목사 자신이었다. 그의 발간물과 연구소를 중심으로 연구한 이단 기준을 총회에서 형식적으로만 연구한 것으로 하고 실질적인 이단 규정은 최삼경 목사 자신이 했다고 자백했다. 이로 보건대 예장통합측 총회는 삼신론자 최삼경 목사에게 이단연구를 맡겨 한국교회의 정체성을 흔들어놓았다고 할 수 있다.

◆ 원세호

예장통합 제87차 총회에서는 그동안 한국교회에서 이단감별사로 활동해왔던 원세호 목사의 주장이 비성경적이거나 이단성을 가지고 있다고 규정했다. 동시에 그동안 잘못된 신학관을 갖고 있는 윈세호 목사로부터 이단정죄 및 조사를 받은 교계인사 및 단체에 대한 이단성문제를 재조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었다.

전통적인 유교집안에서 태어난 원세호 목사는 고3때 예수를 영접,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신학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러나 심한 회의와 좌절을 느끼고 신학교를 뛰쳐나갔다가 13년 만에 다시 신학교의 문을 두드린다. 71년 침례신학대학 정과를 졸업한 그는 74년 3월5일 보광침례교회를 개척하고 82년 10월3일에 ‘임마누엘 성경연구원’을 개원한다. 

‘성경해석의 원리’라는 책을 저술하고 이 책을 교재로 삼아 매년 세미나를 개최한 것이 성경연구원의 시발이 된 것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김기동 목사에 대한 비판 강의를 시작하면서 이단 만들기를 시작한 장본인이다. 이후 그는 같은 교단의 윤석전 목사를 이단으로 만들려고 시도하다 2000년 1월1일부로 기침으로부터 제명당하자 당시 총회장, 증경총회장 등 무려 57명의 목회자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원세호 목사에 대한 시시비비 중 하나가 그가 여호와의 증인 출신이란 것이다. 그 시비(是非)의 쟁점이 되는 것 중 하나가 그가 1973년 11월30일에 발간한 ‘여호와의 증인의 정체’라는 책의 머리말에 “이 자료는 실제로 토론에서 얻은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또한 원세호 목사를 아는 교계 인사들은 그를 향해 “베뢰아를 이단으로 만든 것은 자기 공이라고 자랑하는 사람” “장로교 간판으로 신학교를 운영하는 별난 침례교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들 중에는 베뢰아의 삼위일체는 양태론이라고 뒤집어씌워 정죄한다든지 이단연구와 관련해 거짓증언을 하는 그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라는 말을 하는 자들도 있다. 

그렇다면 원세호 목사는 이단에 대해 어떻게 정의하는가.  

“교회 조직 안에서 이단자 자신이 자기의 의견을 채택하고 그에 따라 성경을 체계화하여 전통적인 참신앙에서 탈선하고 음성적으로 그 교리를 전통적인 참 교리를 앞세워 이단적인 교리를 섞어 교인들 가운데 골라내서 가르치고 그들과 당파를 조성하고 교회에서 불화를 조장시키고 논쟁을 하다가 교인을 끌고 나가는 결과를 맺는 교리 또는 의견으로서 이러한 교훈에 물든 자들의 모임이 이단집단인 것입니다.”(원세호, ‘이단을 확인하는 법 pp.13~14) 

그의 이단의 정의에 따르면 로마 가톨릭에서 개혁된 교회들인 모든 개신교는 이단인 것이다.  
원세호 목사는 또한 국가기관에 허위사실로 고소와 진정을 일삼은 자이다. 한국의 대표 교단인 예장통합측 총회를 ‘이단비호집단’으로, 총회장 및 사이비이단대책위원장과 위원들을 ‘이단비호세력’으로 정죄하고 한국교계에 공포하겠다는 협박성 공문을 3차에 걸쳐 보내는 한편 교계신문에 공표하기도 했다. 또한 자신이 이단자임이 확실히 인정된 이후에도 회개하기는커녕 계속해서 동 교단에 대한 비난을 일삼았다. 

◆ 진용식

진용식 목사와 관련해서는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풀어야 할 많은 숙제가 있다. 개종교육이라는 미명하에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는가하면, 돈을 받고 개종교육을 시키고 자신의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하여 감금하는 등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진 목사는 최근 한 신문사를 통해 “자신은 개종을 목적으로 돈을 받은 적이 없으며 숙식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자신들이 해결하고 있다”며 “인권유린이라는 항간의 소문에  대해서도 전혀 근거 없는 음해”라고 주장했다. 

한기총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있는 진 목사의 이단감별사로서의 자질을 논(論)하기 전에 하나님의 자녀를 양육하는 목사로서나 한 인간으로서 도덕적·윤리적 결함이 있음을 묵과할 수 없다. 또한 자신이 이단이라고 지목한 안식교에서 28년 동안 몸담았던 진용식 목사는 과거 자신이 출판한 ‘안식교의 5대 오류’(국종출판사. 1993, 서울)라는 책을 그해 10월4일자로 책값 1천만 원을 받고 안식교에 넘겨준 일도 있었다.

이 사건을 두고 진 목사측은 “안식교 비판을 포기하거나 중단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안식교와의 ‘회수 및 파기에 관한 합의약정서’를 통해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덧붙여 이 사실을 언론에 이용하지 않기를 약속했다고 한다. 

최삼경 목사는 이 사건과 관련해 진 목사의 책이 내용상 큰 전제는 옳았지만 진 목사가 처음 쓴 책이기에 구조나 형식상 적지 않은 약점이 있어 오히려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고 보았기에 책을 다시 수정해 출판하는 것이 좋겠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그러나 구조나 형식상에 그것도 적지 않은 약점으로 인해 안식교를 비판하는 전체적인 내용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다는 것은 충분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예언자 엘렌 G. 화잇 - 이것이 진용식씨의 오류다'(안금영·라저 쿤 저)라는 책에서는 진용식 목사의 오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진용식 저 ‘안식교의 오류’ (서울: 도서출판 복음사역, 1998)>
▲의도적 생략에 의한 상대방의 의도 조작 
▲서로 다른 두 저자의 글을 교묘하게 조합해 자기의 주장을 이끌어냄.
▲부정확한 인용과 표기상의 오류
▲출처 미상의 인용 - 저술의 정당성, 정직성의 결여로 독자들이 탐색, 비판할 길을 차단.
▲부정확하고 모호한 출처 표기 

진용식 목사는 개종교육이라는 미명하에 성도들을 정신병원에 감금한 사건으로 여러 차례 재판에 회부된 적이 있다. 또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죄로 지난 2001년 12월14일 대법원에 의해 허위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죄(대법원2001도5694)로 확정판결 선고되어 형사처벌을 받기도 했다. 

진 목사는 사법부에 의해 사건의 진실이 명백하게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위 사건(1999년 6월5일 자신이 시무하던 전주성산교회 누전에 의한 화재사고)을 하나님의교회 신도들이 방화했다는 허위사실을 2007년 1월24일 군산시 지곡동 남성교회에서 유포한 바 있다. 

참고자료
▲‘신흥종교연구가 탁명환의 생애, 찬반 엇갈리는 이단 고발자의 비상한 삶과 죽음’, 월간조선, 1994년 4월호
▲‘신동아’, 1994년 4월 p.358
▲‘문화일보’, 1994년 2월22일
▲심상용, ‘종교 마피아적 목사 최삼경씨의 한국교회 짓밟기’
▲심상용, ‘예장합동측 이단목사 최삼경씨의 해괴한 이단사상들’, p.78
▲안금영·라저 쿤 저, ‘예언자 엘렌 G. 화잇-이것이 진용식씨의 오류다’, 삼육대학교
▲진용식, ‘안식교의 오류’, 1998
▲‘밀착취재 원세호 목사’, 현대종교, 1985년 6월, pp.86~89
▲‘원세호 이단론의 허실’, 베뢰아 국제진흥원 연구조사실

이단감별사에 대한 인터뷰

#1

권신찬 목사가 지금의 구원관을 외치며 장로교에서 나오자 많은 장로교 성도들이 따라 나오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교세가 확장되기 시작했다. 그의 설교에 많은 사람들이 흔들리게 되자 장로교 측은 탁명환 씨에게 권신찬 목사에 대해 확인할 것을 요구, 그 당시만 해도 ‘구원’이라는 단어가 어색할 정도였기에 그때부터 ‘구원파’로 불리기 시작했다. 

서울중앙교회(이요한 목사) 이영순 장로에 따르면 ‘박옥수·이요한·유병언의 구원파를 왜 이단이라 하는가?’(정동섭·이영애 지음, 죠이선교회)의 저자 정동섭 교수는 “이요한 목사가 오래전에 잠시 권신찬·유병언 목사와 함께 전도했다는 것만으로 이단이라고 일괄매도하고 있다”며, 정확한 확인절차도 없이 비방한다고 말했다. 

한때 이들과 전도했다는 것이 이단판단의 기준이 된다면, 정동섭 교수 또한 유병언 씨와 수년 동안 해외에 함께 다니면서 그의 통역을 도왔던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영순 장로는 “철저히 검증도 되지 않은 채 자기의 감정과 자기표준으로 무고한 사람과 교회를 무참히 짓밟는 사람을 이단감별사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이요한 목사와 그 교회에서 전하는 내용이 성경에 의해 잘못된 것이 있는지, 참으로 이단적인 요소가 있는지 살펴보고 직접 말해주기를 권했다. 

#2

인터뷰를 통해 박성하 목사는 안식일을 지키는 자신들을 향해 이단이라고 한다며, “95년도 이전에는 자신들을 이단으로 규정지은 것이 교리적으로나 성경적인 이유가 아닌 자신들의 교회 교인이 빼앗기기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탁명환 소장이 안식교를 이단으로 지목한 후, 그 뒤를 이어 최삼경 목사와 진용식 목사가 안식교를 이단으로 만들기로 결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탁명환 소장이 삼육대학에서 강의했던 적이 있음을 언급하면서 자칭 이단감별사들의 목적이 “돈을 벌기 위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 목사는 “타 교단에 대해 이단이냐 아니냐를 비판하려면 그 교단을 비판할 수 있는 학력을 갖추어야 한다”며, 그만한 학력이나 능력을 갖추지 못한 자가 어떻게 이단감별을 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덧붙여 장로교가 이대위를 두는 것은 기독교 본질에서 벗어난 일이라며, 한국 개신교에서 이단감별사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그것으로 밥벌이 하는 사람들이기에 이단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이단감별사는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박 목사는 정통과 이단을 나누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이단시비의 문제는 신자를 두고 쟁탈전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강조했다.
박 목사는 “소위 이단감별사라 하는 자들이 이단을 만들고자 서로 짜고 공문을 주고받은 증거가 있다”며, 이들의 행위는 장로교의 시조 칼빈이 행했던 만행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이단감별사에 대해 총신대 신학대학원 A 교수와 B 교수는 “이단감별사라는 말 자체가 생소하다”며 “이들에 대한 신학적 검증이 필요하다”고 공통된 의견을 제시했다.

A 교수는 “한기총의 이대위 운영 의도는 좋으나 이단시비를 따지는 것은 상당히 상대적일 수 있기 때문에 한쪽에서는 이단이 다른 쪽에서는 이단이 아닐 수 있다”며 “이단 판정은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교단 차원에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감리교신학대학교 C 교수는 “어떻게 보면 이단감별사는 위험한 일”이라며 “이단 찬정은 교단 차원에서 이루어져야지 개인적으로 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이단감별사의 무분별한  활동에 우려를 표했다.   

맺음말

※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이단감별사라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스스로가 이단이라고 지목한 곳에서 나왔으며, 윤리적·도덕적으로도 정직하지 못한 부분이 많은 것으로 지적된다. 또한 자신이 속한 교단에서도 이단시비에 붙은 적이 있었으며, 이단 판단의 기준이 성경이 아니라 교단의 교리와 자신의 생각에 의해 바뀌기도 하는 등 이단감별사로서의 자질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대부분의 이담감별사들이 이단의 기준으로 두고 있는 내용으로 ▲사도신경 부인 ▲그리스도 십자가 구속의 도리 거부 ▲신구약성서의 전통적인 해석 거부 등을 들고 있다. 성경에는 기록된 말씀을 가감(加減)하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로 성경에 나와 있는 반면, 사도신경의 내용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사도신경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이단으로 정죄하기 전에 사도신경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신구약성서의 전통적인 해석 거부가 이단들의 특성이라고 하는데 전통적인 해석이란 무엇인가? 전통적인 해석이라는 것 또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전통일 뿐이지, 그것이 정통과 이단을 구분 짓는 척도가 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도리를 거부한다고 했는데 작금의 기독교세계를 바라보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도리’를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내세우는 교리나 생각에 맞지 않는다고 이단으로 정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연합기관인 한기총에서조차 이단감별사들의 자질 및 자격 기준이 모호하고, 이러한 개인을 통해 종교단체로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이단이라는 굴레를 씌우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단사이비를 논(論)하는 일은 한국교회를 살리는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그 중요성을 알기에 한기총 또한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상설대책 연구기관을 통합 운영하는 것이 좋겠다는 결의 아래 소위원회를 구성하지 않았는가. 소위원으로 최해일, 한명수, 임봉천, 정연택, 이신 등을 선정해 1차 사업으로 1989년 9월4일 문선명대책위원회를 한기총보다 먼저 발족했던 이들이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의 본질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마저 든다. 
 
 
 
 2008/12/17 정말. 내용을 보니 표현할 수 없을 정도네요. 사람이 어찌 자신의 기준으로 이단이니 사이비니 말을 할 수 있는지. 차라리 모르면 모른다 하면 될것을 슬픈 현실입니다.
 2008/12/17 판단과기준은 성경이되어야합니다.
거짓말방송도 빛이되나요?

시간을 늦춘다 한들 잘못된 과오가 사라짐이 아니요...
이전 다음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