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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보다 앞서지 맙시다!
2103 뉴스엔조이 1464 2006-03-20 17:25
나침반이 없으면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철저하게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렇게 40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일교차가 상상을 초월하는 사막의 생활에서 자신의 생각으로 가다가는 처절한 죽음만이 그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살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는 일에도 동일한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광야에서 먹을 것으로 불평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조건을 주셨는데 그것은 5일 동안은 매일 먹을 분량을 그리고 6일 째는 이틀 것을 한꺼번에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즉 일용할 양식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서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욕심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자 이틀 치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하루가 지나자 다 썩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앞서자 나타난 결과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40년을 먹이셨습니다. 

먹고 입고 자는 모든 문제를 우리 하나님이 지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매일의 삶이 행복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앞서기 시작하였을 때 사람들은 불행하여졌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철저한 하나님의 순종을 위하여 규례와 법도를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어 줄 것임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러한 약속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함께 철저한 순종을 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견고한 여리고성이 무너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철저한 하나님의 인도함에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능력으로 불가능한 여리고성이 무너진 것입니다. 이것은 홍해를 건넜던 이전의 역사가 동일하게 일어남을 보여준 것이며 광야의 하나님이 여리고 성의 하나님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배가 부르기 시작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보다 앞서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가나안 족속들을 모두 없애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현실적인 이유로 온전하게 순종하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 가나안의 일곱 족속은 다윗의 시대에 가셔야 비로소 점령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쉬운 삶을 선택하였던 이스라엘은 고난과 슬픔의 역사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역사는 신약의 삶 가운데도 그대로 투영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먹는 것과 입는 것과 자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오직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주권이 우리에게 있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모든 것을 주님의 주권에 맡기고 살았던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의 일하심보다 앞서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신앙을 고백하기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역사를 이끌어 왔던 믿음의 선배들의 공통된 고백입니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았을 때 하나님이 일하셨고 그 열매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시인 말하기를 하나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으며 악의 장막에 거함보다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다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이러한 고백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을 볼 때 가슴이 아픕니다. 기도보다 생각이 앞서고 말씀보다 말이 앞서는 우리의 모습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사뭇 다른 것입니다. 이 땅에 와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고 돌아갔던 믿음의 선진들과는 분명 다른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지혜도 있고, 경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크다 해도 하나님을 앞서는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앞서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순종하며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혁자들이 외쳤던 코람데오 즉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기도 합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이끄시는 삶에 대하여 전전인 순종으로 나아갈 때 삶의 어두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화두가 양극화가 되었습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이것은 정치적인 놀음이지만 동시에 바로 지적해낸 사실이라고 하였습니다. 양극화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이전보다 지금이 더 심해졌다고 느끼는 것은 중산층의 어려움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어제나 오늘이나 앞으로 계속될 것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에 대하여 가난한 자와 과부와 고아들은 언제나 함께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돌보는 것이 참된 경건이며 영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정치적인 목적에 의하여 확대되었고 그 관심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분명하게 존재하더라도 가난한 자에 대한 고민은 감사한 일입니다. 

정치적인 일이지만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하여 일하시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기회인 것입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한 나눔의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이제 교만과 자만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눔과 섬김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보면서 하나님이 앞서서 일하시고 있음을 봅니다. 이제 우리가 이 일에 순종할 때입니다.

나눔과 섬김의 삶은 거창한 구호가 아닙니다. 이것은 실제적이어야 합니다. 즉 피부에 와 닿는 내용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론만 추구하다가 끝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일에 최전선에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피부에 와 닿는 일을 해야 합니다. 주변을 돌아보고 필요 적절한 일들을 하여야 합니다. 큰 교회는 큰 교회대로 작은 교회는 작은 교회대로 주어진 일을 하여야 합니다. 특별히 이 일은 전도의 목적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의 측면에서 접근하여야 합니다. 교회를 세워주신 하나님은 지역을 섬기고 선교와 구제의 삶을 주셨습니다. 이 일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리고 본질이 세워지면 하나님께 믿는 사람을 더하여 주는 부흥을 주실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이 일에 모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도비로 쓰는 재정은 마음껏 지출하지만 지역을 섬기는 일에는 너무 빈약하였습니다. 결국 이러한 일들이 쌓이자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막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교회는 전도와 구제가 본질입니다. 그러므로 균형을 유지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구제는 전도의 한 일환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임을 기억하고 나누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일하심을 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교만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앞서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곳곳에 쓸 일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물질 그리고 건강과 지식을 잘 준비하여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자발적 나눔과 헌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물질의 측면에서도 자발적 가난의 삶을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철저한 청빈을 말하지 않습니다. 분수를 넘지 않으며 보편적인 건덕을 지키는 삶입니다. 그리고 절제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준비되어지면 우리를 통하여 가난하고 힘든 이들을 위하여 섬길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가 이 일을 위하여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응답하여야 합니다. 교회가 쓰려졌던 본질을 세워야 합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순종할 때입니다. 하나님이 앞서고 우리가 따라가는 이 복된 삶이 교회와 우리의 삶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지금이 그 기회입니다. 

이 글은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문화와 설교연구원에 실렸습니다 
 
 
2006년 03월 20일 16:3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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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신춘음악회 2006년 3월 21일 오후 7시 청주예술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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